'내시'는 성소수자가 아니라 남자

[U's Line 유스라인 박병수 편집국장] 세상 밖으로 나오려던 성소수자가 결국에는 멈춰 섰다. 트랜스젠더로 숙명여대 법학과에 합격해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를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던 그녀의 꿈도 입학포기와 멈췄다. 그녀의 입학을 반대했던 숙명여대 학생들은 그녀를 ‘신체적으로 거세한 내시’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내시'는 성소수자가 아니다. 특별한 임무를 맡기기 위해 생식기의 일부를 거세한 남자다. 숙명여대 반대 학생들의 트랜스젠더로 여대에 입학하려던 그녀를 내시로 비유한 것은 무지(無知)의 오류다.

또한, "성전환 수술을 했으면 자신이 도드라지지 않는 남녀공학에 갈 것이지, 굳이 왜 여대에 왔냐"는 반박도 여대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취지와 상반되는 '몽니'에 불과하다. 여대가 설립된 배경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여성이 교육에서 크게 소외돼 온 여성들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소외된 그녀가 숙명여대를 입학하려 한 것은 숙명여대의 전신인 명신여학교 설립목적과 딱 들어맞는다. 여자와 남자를 구별해 선발하기 위한 여자대학이 아니라 여자들만의 고충, 정서적 공감, 여성교육을 보다 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학이 여대다.

그녀가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는 소리가 들리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트랜스젠더 그녀에게 “이 사회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하다”며 붉혔다. 성소수자로 살아오면서 용기를 내 대학에 입학해 꿈을 펼치려던 그녀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취지였다. 또한 교육부는 미안해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철학부재 학교당국, 건학이념은 어디에..." 

특히, 숙명여대 학교당국의 입학 찬·반론 사이에서 취한 어정쩡한 자세는 철학부재 대학으로 보여지기까지 했다. 심하게 말하면 치사해 보였다. “우리 숙명여대의 건학이념은 ‘정숙(貞淑)’, ‘현명(賢明)’, ‘정대(正大)’로서 그러한 사람을 키우려는 학교다. 누군가가 우리들을 필요한다면 그를 안아줘야 한다.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바라보지말고 시대(時代)로 이해해 손을 내밀자”라고 가르쳐야 했다. 그러나 학교당국도 교수중 그 누구도 없었다.

얼마 전, 미국의 오랜 사전중 하나인 '메리엄 웹스터'는 지난해 '올해의 새로운 단어'로 'they'를 뽑았다. 이 'they'는 우리들이 익히 쓰는 3인칭 복수가 아니라 3인칭 단수로 쓰인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단수인 자신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 지난해에 크게 회자됐다. 성 소수자인 LGBT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사고(思考)가 그대로 반영된 일이다.

미국에서는 이것만이 아니다. 최근 미국 민주당 아이오와주 대선후보 경선에서 ‘피트 부티지지’ 후보가 예상외로 1위를 차지했다. 1위가 유난히 국내에서 크게 보도된 것은 동성애자로 소문이 널리 나 있던 이유도 있다. 경선까지 온 것만으로도 예상밖이었지만 1위를 하고나니 청교도 국가인 미국사회가 이제 성 소수자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해석이 잇따랐다. 성소수자에 대해 세계가 흘러가는 모습이다.

'성적 지향' 관점이 지극히 인간적

그녀의 숙명여대 입학을 반대했던 학생들이 못 본 대목이 있다. 남자의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남자가 아닌 그녀의 오랫동안 감춰진 마음속 뒤안길이다. 자신의 겉모습과 다른 ‘성적 지향’을 얼마전까지만 해도 ‘천형(天刑)’이라 했다. 누구도 이해 못하고, 그 굴레를 벗어버릴 수 없는 고통이라는 의미다.

숙명여대 합격생이 남성에서 외형 신체만 여성으로 바꿨다는 관점은 그리 정확해 보이지 않고, 우리들중에 그 누구도 그녀에 대해 감히 속단할 수 없다. 성 정체성은 여성인데 남성이라는 신체로 태어나 남자로 살면서 이제 성전환 수술을 거쳐 자기의 성 정체성에 맞는 몸을 이제서야 가지게 됐다고 보는 ‘성적 지향’ 관점이 훨씬 더 타당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떻게 인간 스스로가 성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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