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제고인가 시장화 촉진인가, 교육부 대학재정지원사업 개편을 보고

▲ 윤지관 한국대학학회장(사진 덕성여대 교수)은 "새 정부의 대학구조조정에는 피해가 불 보듯이 뻔한 학생과 교수 및 연구자에 대한 교육부의 배려가 필수적이나 재정지원 계획에는 이에 대한 예산항목도 없고 배정도 없다"며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는 대학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22일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 개편계획이 확정·발표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후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대학재정지원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을 예고했다. 지난해 12월초 대학기본역량진단 계획과 함께 내놓은 재정지원사업 개편시안에서 과거 정부중심의 재정사업이 ‘시장주의적 사업 방식’으로 경쟁을 심화한 점, ‘개별 사업에 맞춘 분절된 추진’으로 대학 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에 발표된 대학 재정지원사업 개편은 이를 더 구체화한 것으로, 방만하게 운영되던 사업구조를 일반재정지원사업과 특수목적사업으로 구분해 단순화하고, 이 중 일반재정지원사업의 경우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한 것이 핵심이다.

이번 개편이 과거 재정지원사업의 폐해를 개선하려는 의지와 조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정부에서 재정지원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특수목적사업들이 관 주도로 졸속 추진된 결과 중복지원이나 부실한 준비, 무익한 실적 양산, 대학 간의 과도한 경쟁 등 갖은 폐단이 생겨났다. 오죽하면 대학에서 정부지원이 주기적으로 맞는 마약이라고 했겠는가. 그에 따라 1조5천억원에 달하는 대학재정지원사업이 대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대학을 통제하는 데 쓰이고 국비를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했다. 촛불의 한 도화선이 된 이대 사태도 이 같은 폐단이 대학의 기본질서를 훼손할 정도로 심각해진 상황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율성 강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라는 방향 자체는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향 전환과 지원방식의 변화가 과연 실질적으로 현재 대학에 요구되는 변화에 부응하는 것인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재정지원사업은 정부의 대학정책을 뒷받침하고 추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의 대학정책 방향과 연동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폭적인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선 한국 대학의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해야 한다. 이번 재정지원사업 개편은 이 점에서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교육부 재정지원사업의 문제점들

첫째, 재정지원은 대학의 구조조정 국면과 연계돼 있다. 자율성을 높여서 과도한 경쟁을 막겠다고 하나 대학의 자율성 신장은 모든 대학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상위 60%에 해당하는 대학에만 부여하기 때문에 상위권에 들기 위한 대학들의 생존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더구나 15% 정도의 최상위 대학을 제외하고 모든 대학에 정원감축을 요구한 지난 정부와는 달리 상위 60% 대학에는 정원감축을 실질적으로 면제하기 때문에 하위권에 조정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물론 향후 3년간 감축규모 5만명을 2만명으로 낮추고 하위권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규모의 정원감축을 권장한다지만 이는 나머지 감축분은 학생들의 선택, 즉 시장에 맡기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자율성을 제고한다는 방침이 결국 시장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빚을 것이 우려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둘째, 대학이 자율적으로 작성해서 제출하는 중장기계획이 신설된 일반재정지원 규모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학주체의 자율적인 참여를 통한 대학개혁이라는 점에서 진일보라고도 하겠지만, 문제는 그 자율성의 방향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번 개편계획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를 앞세우고 경쟁력을 강조한 데서도 엿보이듯 그 방향은 산업이나 경제에 기여하는 쪽에 현저하게 기울어 있다. 중장기계획의 모범사례로 든 미국의 두 대학도 창업이나 기술혁신이 중심인 점이 이를 말해준다. 자율성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결국 산업 중심의 대학구조조정을 요구해온 지난 정부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셋째,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제고한다는 명분으로 새롭게 재정지원사업에 도입된 것이 국립대 지원 확대다. 거점국립대의 역할을 강화해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하고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립대 양성도 필요하나 고등교육의 공공성 제고는 전체 대학의 85%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을 현재 상태로 두고서는 불가능하다.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당수의 사립을 현 정부에서도 언명하고 있는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공영형 사립대학 기획은 거의 유명무실하게 돼 재정지원사업에서도 제외됐고, 시범사업 정도로 명목만 남아 있다. 현 정부가 하위대학들에 조정을 집중하는 정책방향을 택한 이상 공영형 사립대학 기획은 거의 무산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자율성 강화와 공공성 제고를 앞세우고 단행된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사업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국 경쟁력과 사업성 혹은 시장성에 방점이 가 있다고 보인다. 대학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피해가 불 보듯한 학생과 교수 및 연구자에 대한 교육부의 배려가 필수적이나 재정지원 계획에는 이에 대한 예산항목도 없고 배정도 없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위 대학이 어떤 혼란을 겪더라도 도태시키고 상위 대학에 지원을 집중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 이 정부의 대학정책인 셈이다. 줄 세우기식 기업체 구조조정 방식이라고 비판받아온 과거 정부의 대학구조개혁과 얼마나 다른지 의문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지금도 심각한 서열화를 더 부추길뿐더러 대학의 경쟁력도 제대로 형성될 수 없다. 대학생의 절반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방치하고서 대학의 경쟁력을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 문제는 교육분야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정치·문화 등 국가 전반의 문제와 중첩돼 있다. 무엇보다 굳어진 대학의 서열체계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구조와 결합돼 대학이 이 구조의 재생산기제가 돼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높다. 새 정부의 대학정책과 재정지원사업 개편이 과거 정부의 폐해를 일부 개선하고는 있지만, 이 구조적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는 대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촛불의 정신을 토대로 한 정부라면 지금이라도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모색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한국대학학회 회장

                                     (※본 글은 ‘창작과 비평’ 주간비평에 게재)

 

저작권자 © Usline(유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